후루시쵸프의 개방정책 후 순수 리얼리즘 풍경화를 지향하는 화가들이 드디어 숨을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부합하는 그림만을 그려야 했던 리얼리즘 풍경화 작가들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혁명 이전의 무드 풍경화의 장점을 잘 살린 그림들을 다시 그려내기 시작했고, 그 선두에 유리 쿠가츠, 발렌티 시도로프, 유리 쿠가츠의 아들인 미하일 쿠가츠 등의 빛나는 활동이 있었다. 그들이 빚어내는 서정적 풍경화는 한 편의 시를 보는 듯 아름답다. 그림 속에 노래가 있고 이야기가 있으며 따뜻한 감성이 흐른다. 전통을 바탕으로
■ 미하일 시바노프 '결혼 계약의 축하'-농민의 결혼식농민이었다. 대부분이 농노의 신분으로 지주에 소속되어 노동을 제공하고 또 국가에는 세금을 납부하고 병역 의무를 지며 살았다. 그 농노의 삶은 너무도 피폐하여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배불리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지주의 허가 없이 여행을 할 수도,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다.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의 뿌리이기도 한 1700년대 참혹한 현실, 그림은 그런 헐벗고 굶주린 농노들에게도 인간으로서 성스런 의식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이 그림의 배경이 된 지역은 러
슬픔이 쓰나미일 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신을 다독인다. 바스네쵸프의 를 보면 슬픔이 누그러진다.절망에 빠진 어깨에 내 슬픔을 올리고 몇 번을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돌덩이가 되어 버린 그녀의 헐벗은 발을 어루만지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맥없이 흐느끼는 알료누쉬카의 눈물 한 방울이 날 정화시킨다.살다 보면, 말하려니 우습고 삭히자니 무거운 일들이 어디 한두 개인가?그럴 때마다 를 보며 혼자만의 카타르시스를 찾는다. 그림 속 연못은 고아인 알료누쉬카가 힘들 때마다 혼자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지 마라, 성내지 마라!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기쁨의 날이 옴을 믿어라.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나가는 것.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워지는 것을 -알렉산드르 푸쉬킨그림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시대가 만들어낸 슬픈 역사!! 화폭에 담긴 인간사가 절절하다. 19세기 러시아 화가들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그림은 가치가 없다’고 단언하고 민중들의 눈과 귀가 되어 러시아의 아픈 시대상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는다. 그렇게 그림의 힘으로 소설가보다 더 소설가같은 스토리텔러가 되
한편, 이동파의 풍속화와 함께 또 하나의 산맥으로 발전하던 무드 풍경화는 이동파의 해체를 맞아 예술적 변화를 거듭한다. 1894년 레핀 등 이동파 핵심 화가들이 미술 아카데미 교수로 취임하고 미술계의 주류가 예술 아카데미로 넘어가면서 이동파는 해체된다. 19세기 러시아 미술의 핵심으로서 이동파는 세계 어느 미술사에서도 볼수 없는 예술적 쾌거를 이뤄내지만 1923년 전시가 마지막이었다.당시 러시아 혁명과 더불어 미술계 또한 아방가르드라는 예술적 변화를 겪는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1915년에서 1932년에 일어난 신원시주의, 광선주의
러시아는 샤갈, 말레비치, 칸딘스키의 나라이며, 20세기 초반 세계 모더니즘 생성에 뿌리 역할을 했다. 19~20세기에 걸쳐 폭발적인 예술적 성과를 이룬 러시아 미술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이동파의 활동을 들 수 있다.1864년 이반 크람스코이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이동파는, 지배층에 저항하는 그리고 러시아 현실을 고발하는 사실주의적 화풍을 기치로 내걸고 1871년부터 러시아 전역을 돌며 순회 전시회를 열었다. 예술의 현실 참여를 중요시하였으며, 아카데미 화파에서 혜택받지 못하는 많은 작가들이 이동파 전시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인간의 욕망은 권력의 최정점을 꿈꾼다많은 부분을 희생하면서까지 높은 곳에 있는 권력을 손에 넣으려 안간힘을 쓴다.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이들에게 이쯤에서 그만두고 주변을 돌아보라 충고해도, 인간의 욕망은 그칠 줄 모른다. 결국엔 천륜도, 인륜도 저버리고 끝도 모를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이 권력의 노예가 된 자들이 갖는 속성이다. 부모와 반목하고 형제끼리 칼을 겨누며 부부가 서로 죽이는 권력, 우린 그렇게 권력의 시녀가 되어 비참한 말로를 걷는 수많은 위정자들을 보아 왔다.러시아라고 예외일까?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아내가 남편을 독살하
먹구름지나간 폭풍우의 마지막 한 점 먹구름아!너 혼자만이 산뜻한 군청빛의 하늘을 질주하고 있다.너 혼자만이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너 혼자만이 기뻐 어찌할 줄 모르는 낮을 슬프게 하고 있다.조금 전까지 너는 하늘을 온통 감싸 뒤덮었고,번개가 너를 무섭게 휘감았다.너는 비밀스러운 천둥소리를 내며목마른 대지를 바로 촉촉이 적셨다.이제 됐다. 모습을 숨겨! 때는 지나갔다.대지는 신선함을 되찾았고 폭풍우는 지나갔다.바람이 모든 나무의 잎사귀를 애무하며평정을 찾은 하늘에서 너를 내몰고 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검은 구름 뒤로 밝은
노랗게 익어 가는 들판이 물결칠 때/ 미하일 레르몬토프노랗게 익어 가는 들판이 물결칠 때신선한 숲이 바람 소리에 술렁일 때뒷마당엔 빨간 나무딸기가 초록 잎의 달콤한 그늘로 몸을 감출 때노을이 질 때나 아침이 금빛으로 다가올 때향기로운 이슬을 머금고 덤불 숲 뒤에서은빛 방울꽃이 안녕하며 고개를 내밀고 나올 때찬 샘물이 어렴풋한 꿈속으로 생각을 빠뜨리고계곡을 따라 춤추듯 흘러가며그가 달음질쳐 온 평온의 세계에 대한 비밀스런 전설을 이야기할 때그때 내 불안한 영혼은 달래지고그때 내 이마의 주름살은 펴지며이 땅에서도 나 행복에 이를 수 있
이 흰 바람 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나를 울력하는 듯이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백석 중에서절대 고독
[소셜타임스=최희주 기자]어디로 가려는 걸까.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오솔길을 지나고 험한 다리를 건너 마침내 큰 길에 선 여인. 표정이 다부지다. 새로운 출발을 각오하는 것 같다. 아쉬움인 듯 기쁨인 듯 묘한 감정도 엿보인다. 지나온 길, 나아갈 길. 넓고 쭉 뻗은 희망의 길이 여인을 토닥인다.러시아 작가 미하일 쿠가츠(81)의 ‘먼 길’이라는 작품이다. 미하일 쿠가츠는 러시아 사실주의 전통을 잇는 최고의 작가다. 국내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작품이다. 러시아 대가의 작품을 국내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 아닐 수 없다.‘러
삶이 절망적일 때가 있다. 잘 살 수 있을 거란 희망만 가지고 시작한 러시아에서의 처음이 그러했다. 읽지도 쓰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내가 낯선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하루하루 지쳐가던 내게 러시아 그림이 소곤소곤 말을 걸어왔다.'삶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있다고, 삶의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야로센코의 이 그림이 내게 긍정과 희망을 보여주며 삶에 대한 겸손을 얘기해 주었다.톨스토이는 소설 에서 이렇게 말한다."나는 이제야 알았다. 사